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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무비=글 김꽃비]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똥파리>는 빌려간 돈을 대신 받아주는 일을 하는 건달 상훈과 그의 앞에 우연히 나타난 여고생 연희. 불우한 가정사와 상처를 공유한 인물인 이들이 조금씩 삶을 발견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양익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있는 이 영화는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여고생 연희 역을 맡은 김꽃비가 보내온 로테르담 영화제 참관기를 1, 2편으로 나누어 업데이트 하기로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일지 공개.

<똥파리>, 로테르담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로테르담 영화제라면, 내 데뷔작인 박찬옥 감독님의 <질투는 나의 힘>이 수상한 바 있는 영화제. 왠지 나와는 인연이 깊게 느껴진다. 이번 영화제 일정에 맞춰 계획을 짰다. 아주 알뜰살뜰한 계획. 1월 말에 로테르담 영화제에 갔다가 2월 초에 돌아오는데, 3월 초부터 ‘라스팔마스영화제’, ‘도빌아시아영화제’, ‘프리부르영화제’, ‘피렌체한국영화제’가 3월 말까지 죽 이어져 있다. 그럼 한국에 돌아와서 한 달 있다가 또 나가? 비행기 표 아깝게 뭐 하러?! 게다가 내 남동생은 현재 파리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결론은,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동생 집에서 얹혀 지내며 ‘파리지엔느’가 되어 보는 것! 음하하~ 아주 완벽하다! 신난다!

1월 22일 오전 6시 반

양익준 감독님, 윤종호 촬영감독님과 함께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 찾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7시 반이 넘었는데 밖은 아직도 캄캄하다. 여긴 해가 이렇게 늦게 뜨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선 타국. 물품 보관소에 짐 하나 맡기는 데도, 동전 하나 바꾸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우리는 저녁 늦게 오는 해외 배급사의 소영씨를 일부러 기다리기로 했다. 로테르담에 있으면서 따로 관광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도착한 첫날 암스테르담 관광도 할 겸 해서. 윽,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의 행보는 꼬이기 시작했다. 내내 공항과 기내에 있었던 터라 너무 더웠던 우리는 바깥 날씨도 모르고 대충 입고 짐을 모두 물품 보관소에 넣어 버렸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보니 이게 날씨가 만만찮은 거다. '아직 해가 안 떠서 그럴 거야.. 해가 뜨면 좀 따뜻해지겠지..' 8시가 넘었는데 아직 해도 안 떠 관광하기도 뭐하고 참 애매했다. 어쨌든 일단 표나 사보자 해서 암스테르담행 표를 구하는데도, 이것 참. 왜 이리 비싸? 처음부터 우리는 고환율과 고물가에 잔뜩 쫄아 왕복 7유로짜리 표에도 덜덜 떨었다.

나중엔 그 물가에 어느 정도 적응해 7유로가 그리 비싼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어쨌든 여차저차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9시 정도였는데 이제 슬슬 해가 뜨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현대식 은행이 처음 생긴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더치페이(dutch pay)’도, 더치가 네덜란드 사람이란 뜻이었다. 나는 독일인인 줄 알았는데. (물론 독일인이란 뜻도 있지만 German이 더 명확하다.) 그만큼 돈에 관해 치사할 만큼 철저한 나란데, 첫날부터 혀를 내두르게 했다.

평소 국내 여행을 즐겨 하는 나는 그 지역에 가면 일단 관광 안내소를 찾는다. 거기서 여러 정보(특히 지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관광 안내소를 찾아 갔는데, 아직 문도 안 열었더라. 그런데 앞에 한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관광지도자판기였다. 세상에.. 우리나라에선 그냥 공짜로 막 나눠주는 관광 지도를 얘네는 그것도 2유로에 파네? 정말 ‘헐’이었다. 다행히 우리에겐 촬영감독님이 가져온 ‘이지유럽’이 있었다. 두껍고 무겁기만 한 책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강 목적지를 정하고 걸었다. 날씨는 비도 오고 추웠지만 일단 날이 밝고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하니 기분은 좋았다.

처음 와보는 네덜란드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바다 위에 있는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만큼 네덜란드는 지반이 약해 건물들을 모두 따닥따닥 붙여지었다고 한다. 그건 알겠는데 건물들이 휘어있는 건 뭐지? 얘네는 피사의 사탑이 안 신기하겠네. 지반이 약해서 휘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수 십 년인지 십 수 년인지 후에는 바다에 잠긴다는 얘기도 있던데. 아무튼, 유구한 역사가 느껴지는 건축물들과 거리를 거닐자니 개발에 사라지는 우리 전통가옥들이 더욱 안타깝다. 걷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 온다. 10시가 넘었는데 아직 문 연 가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해가 늦게 떠서 일들도 다 늦게 시작하나? 다행히 빵집은 열어 빵 하나를 사서 셋이 나눠 먹었다. 비는 점점 많이 오고, 우리는 그렇게 기껏 챙겨온 우산도 물품 보관함에 넣어둔 채, 목도리 하나, 모자 하나, 장갑 하나가 절실한 채, 비바람을 맞으며 암스테르담을 헤매었다.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결국 기차를 타고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피폐한 모습으로 로테르담 입성.

1월 23일


▲ 첫 날 인터뷰 사진 촬영. 이 사진 좀 뽀샤시하니 잘 나왔다. 하하

<똥파리>의 첫 상영이 있는 날이다. 감독님은 첫 날부터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게스트 배지를 받고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다. 우리를 맡아 도와주는 엔젤(자원봉사자) 정하씨와 렌(LEN)이 함께 했다. 정하씨는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이고 렌은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네덜란드인이다. 렌은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월이면 한국에 서강대 교환학생으로 온단다. 렌과는 거의 한국말로 대화를 해도 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영화를 공부하고 싶다고도 했는데, 감독님에게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 렌과 라이덴에서 시장을 구경하다가 모자를 쓰고! 예뻤는데, 사려는 걸 렌과 빅터가 저런 거 다 중국에서 떼어오는 거라며 말렸다.. 그냥 살 걸~

이제 상영 시간이 다가왔다. 관객은 많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극장 안에 들어섰다. 무대 인사를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부담감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큰 극장은 처음 봤다. 550석 이랬던가? 거기다 관객도 꽉 차 있었다. “full house!” 하며 게스트 담당자인 루시우스(LUCIUS)가 감탄한다. (생김새며 분위기까지 모건 프리먼을 닮아서 내가 무척 좋아했다.) 압도적인 수의 관객들 앞에 서니 새삼 떨려왔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에게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응원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관객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초반의 폭력적인 장면에서 사람들의 당혹감과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머지않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걸 난 알았다. 연희과 상훈의 만남에서, 상훈과 만식의 대화에서, 환규가 나올 때마다, 극장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어 하더라. 그 활기찬 반응에 우리도 신나고 뿌듯했다. 상영이 끝나고 압도적인 관객 수만큼 압도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벅찼다. 압도적인 박수 소리가 우리의 심장을 두드렸다. Q&A를 마치고 관객들이 와서 악수를 청하고 잘 봤다고 인사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처음에는 폭력적인 장면 때문에 불편했다고, 하지만 곧 이해하게 됐다고.

1월 24일


▲ 로테르담 영화제의 심볼 타이거 조명과 어흥~ 바닥에 눕는 것 따위 부끄럽지 않다.

다음날, 여기저기서 <똥파리>(영문제목:BREATHLESS)의 얘기가 들린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화 좋다고 소문났다', '기대가 크다', '매진이 돼서 못 봤다. 너무 아쉽다. 다음 상영은 꼭 볼 거다' 등의 얘기를 했다. 우리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가 싶기도 했는데, 옆 테이블에서 우리가 있는지 모르고 자기들끼리 기대작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어떤 영화가 좋다더라, 어떤 영화도 기대작이라더라, 근데 <똥파리>가 제일 좋다더라. 조금 팔불출 같고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전하기가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인 걸;

두 번째 상영은 베니스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자 우리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해주는 친구인 파올로(PAOLO)가 모더레이터를 했다.(이것도 자신이 자처했다고 한다.) 이제 첫 상영의 긴장감도 덜었고, 든든한 친구가 있어주니 한결 여유로웠다. 객석은 역시 만석이었다. Q&A를 하는데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을 안 좋게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영화 속 폭력이 실제로도 흔히 있는 일이냐'는 질문도 했다. 나는 새삼 한국이 이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는 걸 느꼈다. 이 영화가 미국 영화였다면 그런 질문은 안 했을 텐데. 그런데 올해 출품된 한국 영화들, 참 지독히도 '센' 영화들도 왔다. 소문만 익히 듣고 두려워 아직 도전하지 못한 김곡 감독님의 <고갈>, 김태곤 감독님의 <독>, 김경묵 감독님의 <청계천의 개>(이것 역시 아직 도전하지 못했다), 나홍진 감독님의 <추격자>도 있었고, 노영석 감독님의 <낮술>, 고은기 감독님의 <내 사랑 유리에>도 초청됐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좀 거칠 수도 있겠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영화 중 하나가 <올드 보이>라던데.

1월 26일


▲ 빔 벤더스 감독의 풋풋한 사진 옆에서~

벌써 마지막 상영이다. (우리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스웨덴에서 열리는 예테보리 영화제에도 출품됐기 때문에 로테르담에서 초반에 상영을 하고 예테보리 쪽으로 프린트를 보내야 했다.) 역시나 만석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하지 못해 아쉬워해 우리도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우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영화를 보지 않고 그 동안 밥을 먹었다. (농담이다. 마지막 Q&A까지 마친 우리는 빔 벤더스 감독님의 젊을 적 사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 쪽에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의 젊을 적 사진도 있었는데, 무척이나 귀여우셨다.)

Posted by 나에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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