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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0 왓치맨 Watchmen

왓치맨 Watchmen

영화 2009.03.10 13:31

"왓치맨은 제목이 왓치맨인거 보니까 차고 있는 시계에서 레이저 광선 발사되고 시계 차고 있으면 힘세지고 뭐 그런건가보지?" 하는 정도의 엉뚱한 짐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면, (제가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구성된 형태라든가, 대체 뭔 어떤 내용으로 돌아가는 영화인가 하는 내용 하나하나 조차도 반전 비슷하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대충의 소재나 구성 형태에 대해서는 밝히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왓치맨은 몇몇 초능력 영웅들이 40년대부터 활약해오기 시작했다고치고, 그런 가정하에서 70, 80년대 미국의 역사가 좀 달라졌고 그렇게 진행된 80년대에 그 초능력 영웅 중 하나가 살해당하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입니다.


(만화 원작이고, 원작대로 열심히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왓치맨"은 일단은 163분이나 되는 상당히 긴 영화이고, 그래서 시간을 넉넉하게 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거리를 많이 벌려 놓는 느낌이 물씬 나는 영화였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불교 철학 비스무레한 내용부터, 70, 80년대 미국 정치 상황에 대한 풍자, 죄와 벌에 대한 신화적인 줄거리에, 제임스 본드 영화 악당처럼 괴상한 비밀기지에 살면서 자신의 지구 정복 계획 설교하는 인간을 권법으로 두들겨 패면서 싸우는 내용까지, 많이도 풀어 놓습니다.

자유롭게 화끈하게 풀어 놓기 위해서 피 튀기고 뼈 튀기고 살 튀기고(튀기기(彈)도 하고 튀기기(炸)도 합니다) 하는 과감한 장면도 마음껏 썼습니다. 그리고 그런만큼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비관적이고 처절하고 냉소적인 분위기입니다.


(80년대 폭력영화로 잠시 자리매김했던 "로보캅" 영화속의 악몽 같은 디트로이트 분위기와 닮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매끄럽게 엮여 있느냐 하면 썩 그렇게 잘 엮여 있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한 편 속에서 이렇게 늘어놓는 다채로운 재미를 자연스럽게 모두 다 느끼게 해 주면서 이야기 속에 빨려들게 하는 경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닥터 맨하튼"이 이끌고 나가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금강경 운운하던 것보다 조금 더, 그야말로 조금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좀 알맹이 없이 분위기만 겨우 잡아 주는 정도고, 그나마 그런 심오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느낌도 "매트릭스: 레볼루션" 보다도 더 나은지 어떤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성의 광경과 화성에 펼쳐진 신비로운 신전과도 같은 풍경은 아마 유치환의 시, "생명의 서" 느낌 같은 것이 나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성 풍경은 그 모양이나 미술 표현, 표현해낸 컴퓨터 그래픽 솜씨가 모두 모자랐습니다. 대충 보고 있자면 애니메이션 "아마겟돈" 생각이 나는 정도 입니다.


(파란색깔이 아니라 노랑색깔이었으면 "소림사 18 동인" 촬영장으로 바로 달려가도 충분할 법한 상당히 변태스러운 느낌도 강한 닥터 맨하튼)

그렇다고 때리고 싸우고 날아다니고 하는 장면들이 아주 신기하고 많이 재미있느냐 하면 그게 썩 그렇지도 않습니다.

재미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중요한 장면마다 느린 동작을 사용하고 자유롭게 여러 방향의 모습들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리고 맞는 타격감, 충격감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적절하게 잔인한 장면들과 섞어 놓은 모양에는 오히려 넘치는 힘이 잘 표현된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신난 박자감각을 보여주는 연출이 있다거나, 보기 드문 개성적인 연출 방법을 보여주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연출도 따지고보면 "씬 시티"나 "300"과 같은 영화와 비슷한 통속일 것입니다.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색조라든가, 구도와 조명에서 사실감 보다는 회화적인 표현을 중시하려는 것은 이런 영화들과 같습니다. 웃고 있는 배지에 피가 튀긴 모양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잘 보여주기 위해 큼직하게 화면에 담아내다가 부드럽게 멀어지고, 고층빌딩에서 추락하며 죽는 등장인물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화면 안에 담아내는 모양은 바로 그런 예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현실의 색채나 정상적인 야외 촬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아버리는 듯한 "씬 시티"라든가, 과감하게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묘사해내는데 힘을 쏟은 "300"만큼 호사스럽게 과시하는 정도에는 또 못 미칩니다.

요컨데, 이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과 만화 원작의 색채와 회화성을 적극 도입한 화면을 꾸려 넣으려고 시도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그런 것 안쓰던 시절보다 딱히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을 보여주었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고층빌딩에서 추락하며 죽는 등장인물의 모습조차도 차라리 고전적인 수법으로 만든 "리셀웨폰" 시작 장면 같은 것이 도리어 더 효과는 좋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왓치맨"에서 이런 "씬 시티"스러운 수법들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은 몇 안되어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가 시작할 무렵에 이 영화처럼 초능력 영웅들이 있는 시대의 미국 역사가 1940년에서 1980년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간략하게 요점을 집어서 보여주는 대목 같은 것이 개중에 썩 흥미진진한 느낌이 있는 정도입니다.


(색보정 필터 걸어서 푸르스름하게 해 놓으니까 우울해 보임)

음악도 비슷해서, 잘 맞춰 놓으면 굉장히 중후해 보일 수 있는, 흘러간 옛노래를 기막히게 사용해서 뭔가 보여줄 것 같은 부분들도, 그저그런 수준에 머물거나 그냥 진부하게 주저앉아버리는 대목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Unforgettable"이 나오는 대목은 대충 나쁘지 않은 정도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Moonlight Serenade" 나오는 부분과 사실상 똑같이 꾸민 것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The Sound of Silence" 나오는 부분 같은 것은 운치가 좀 있어 보이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브이 포 벤데타" 같은 영화에서 정석 고전 음악으로 화끈한 성과를 거두는 모양에 비하면 아쉬운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목표에 충분히 도달했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하고 중후한 관념적인 내용과, 정치와 현실 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내용, 신나게 날뛰는 즐거운 힘, 도전적인 연출과 촬영 기술상의 도전 등등을 다 때려 넣으려는 듯한 틀로 시작한 영화로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끝까지 보면 정말로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를 확실하게 이루어내었다고 자랑할만하다고는 못할만 하다고 보았고, 그래서 아쉬운 점이 분명히 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저 나이트 아울하고 똑같은 포즈를 모니터 앞에 취해 보십시오: 엉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에 가까운 이 긴 영화는 그 시간 동안 충분히 볼만하고, 그 모자란 재미거리들이, 또 그런데로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버텨주고 있기도 합니다. 굉장히 감명 깊은 순간이 많은 영화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보고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감명 깊게 하려고 시도는 열심히 했구나 아주 확 실패한 것은 아니네' 싶은 맛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 홈런포 이대호 선수가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기에서, 비록 이대호 선수가 호쾌하게 홈런을 날리지는 못했습니다만, 갑자기 내야안타를 기록해서 헛헛헛 하고 대견한 웃음을 지으며 "나름대로 재미난 일일세"하면서 경기에 빠져들게 하는 듯합니다.

이유로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시 이렇게 여러 명의 초능력 영웅이 떼거리로 나오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껀 수라고 할 수 있는 인물간의 배분과 조화가 썩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다양하게 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풀어 놓아도 대충 어울리도록 다채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잘 섞어 어울릴 수 있도록 역할 배분과 이야기 배치가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초능력 영웅 여러분)

정말 중요한 인물들은 네 명 정도 입니다. "닥터 맨하튼", "나이트 아울(댄)", "로어셰크", "코미디언" 여기에 한 명을 더 집어 넣는다면 "오지맨디아스"도 집어 넣을 수 있을텐데, 나머지 네 사람만큼과는 확실히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이 네 사람은 과거 회상 장면이나, 자신이 어떻게 초능력 영웅이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시간을 교대로 나누어 가지면서, 거의 영화 속의 영화라 할만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정도로 자기 개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주인공급 인물들입니다.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사람은 사실 이야기 내용상으로 볼 때 주인공스러운 역할은 0% 정도 밖에 안합니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각각 자기 개성으로 인해서 이 영화가 다루는 많은 이야기 거리들의 여러가지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자리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 시피 "닥터 맨하튼"은 신영균이 연기한 석가모니 비슷하게 득도한 듯한 분위기의 면상과 심성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인간으로, 심지어 정말 스님처럼 삭발까지 하고 나옵니다. 그래서 우주 전체가 어쩌니 생명의 의미가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면서 신과 인간, 종교와 존재론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뜬구름 잡이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나이트 아울"은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백만장자가 돈을 들여서 최첨단 장비를 갖춰서 싸우는 초능력 영웅입니다. "나이트 아울"은 적당한 의협심과 적당한 비겁함을 갖춘 보통 사람, 그러니까 관객과 비슷한 성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친 변태들이 득실거리는 우울한 분위기의 이 영화 속에서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서 주는 인물입니다. 그런만큼 초능력 영웅으로서 악당들과 신나게 싸울 때 관객이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느낌을 주기도 좋은 인물입니다.

"로어셰크"는 나이트 아울과 같이 바탕은 보통 사람, 관객과 비슷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트 아울과 달리 로어셰크는 백만장자가 아니라 양아치들 득실거리는 뒷골목 동네에서 이를 갈면서(육체적으로도) 자라난 인물입니다. 그 덕택에 로어셰크는 문제를 마주 했을 때 고민과 돈이 아니라 원초적인 의지와 거기에 엮여 있는 악과 깡으로 버텨내는 인간입니다. 비록 "나이트 아울"처럼 완전히 보통 사람의 감성을 드러내는 인물은 아닙니다만, 관객이 이야기 흘러가는 것에 열받을 만한 순간일 때 같이 열받고, 관객이 이야기에서 슬픔을 느낄 때 같이 슬퍼하는 입장인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로어셰크"는 느와르 영화 주인공 분위기로 싸우는 사람이라서, 느와르 영화 같은 "독백"을 하도록 되어 있고, 이 때문에 또 관객과 가깝게 서 있는 인물이 될 기회를 많이 얻기도 했습니다.


(느와르 로어셰크)

"코미디언"은 왜 이따위 인간이 어째서 "영웅"인가 싶은 인간으로, 주먹질을 평균보다 좀 더 잘한다는 것과 성격이 비인간적으로 개같다는 것 이외에는 별달리 싸우는데도 득이 될 것이 없는 놈입니다. 이 인간은 "초능력 영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악당 쪽에 살짝 더 가깝지 않나 싶은 듯한 인물로, "닥터 맨하튼" 이상으로 관객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탓에 코미디언은 "저 인간은 왜 저럴까?"하는 느낌을 많이 불러 일으키고, 그래서 여러가지 미치광이 같은 일들에 많이 엮이게 하고, 알 수 없는 일을 많이 저지르게 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수수께끼를 불러 일으키거나 알 수 없는 호기심 생길만한 사건을 엮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서 무슨 커다란 사연이 있는 듯한 느낌이나, "저 놈이 저렇게 된 이유가 있는 느낌", "저 미친놈이 한 마디 중얼거린 것이 무슨 큰 비밀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영화의 음울하고 처절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건을 꾸밀 때 워낙에 막가는 놈이니까 대충 아무렇게나 박아서 이런일 저런일 저지르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시켰습니다.


(이 "코미디언"의 추잡함에 비하면 코미디언 중에서 왕비호니 하는 사람들은 양반입니다. 양반 중에서도 서인 노론 안동김씨 양반입니다.)

이 영화는 이 네 사람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미면서, 네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게 영화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사는 닥터 맨하튼 부터, 날개짓을 해야 날 수 있는 나이트 아울과 땅위를 걸어 다니는 로어 셰크, 그리고 지옥에서 뒹굴고 있는 코미디언까지 차례로 넓은 범위의 성격을 뒤덥고 있습니다.

닥터 맨하튼의 상황과 닥터 맨하튼이 살아온 사연, 로어셰크의 상황과 로어셰크가 살아온 사연은, 아예 영화 속의 영화처럼 긴긴 회상 장면으로 따로 떼어서 한참 동안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어떻게 보면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의 전체적인 음울하고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같이 가져가고, 이런 것을, 사실주의를 벗어난 색채와 조명이며 보여주는 방식으로 통일성을 만들어내서 이야기를 엮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례를 꼽자면 "킬 빌"에서 이런저런 서로다른 등장 인물의 옛 사연들을 하나 둘 꺼내 보여주면서 하나의 영화를 모아 놓은 방법과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왓치맨"은 훨씬 더 거창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도록 꾸민데다가, 이런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거가 이야기 속의 갈등과 최후의 악당의 음모를 밝히는 내용과 상관이 있는 면이 있어서, 좀 더 각각의 이야기들이 그럴듯하게 다가옵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주인공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좀 엉성한 부분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이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 보다는 훨씬 더 잘 꾸며 놓은 셈입니다.


(가장 관객들과 감정이입이 깊다고 할 수 있는 나이트 아울은 회상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관객의 상식 안에 있기 때문에 딱히 뭘 안보여줘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저렇게 영화를 끌어 가면서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기에 좋은 나이트 아울과 로어셰크 두 사람에게 초점을 집중하고,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런 것은 사실 거창한 이야기의 폭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순한 형사 이야기에서 막판에 악당과 싸우러 갈 때 쓰는 수법입니다. 이성적인 형사와 거친 형사(good cop, bad cop)가 마지막 즈음에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악당과 결전을 벌이러 뛰어드는 구도 그대로인 것입니다. "코미디언"이 세계의 역사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거대한 축과 연결되는 비밀을 숨기고 있고, 뭔가 엄청난 비극의 주인공인냥 행세했지만, 막판에 보면 별 일 없이 슬쩍 초점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냥 관객에게 제일 주인공 같아 보이는 인물들 끼리 주인공 행세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갑자기 너무 가벼워지는 느낌이 나고, 대단한 이야기거리들이 끝없이 많을 것 같았던 데 비해서 확 단순무쌍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그만큼 무난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극적으로 마무리를 하는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힘도 생겼습니다.


(아무리 천하의 로어셰크 라지만, 파리나 모기 잡는 장난할 때 많이 쓰는 이것이 그렇게 강한 파괴력으로 등장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그때문에, 특히 영화를 끝까지 보면 로어셰크는 매우 중요하고 가장 멋진 인물로 똑똑히 자리를 잡습니다. 이 영화가 마지막 즈음에 가면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를 모으고 모아서 결과적으로는 대강 그럴싸한 주제를 겉보기로는 하나 눈에 보이게 뽑아냅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나오는 식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적 실존주의" 비스무레하다는 생각을했는데, 그러니까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굴레 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 뭐 이런 류의 이야기 입니다. 끝까지 굴려봤자 돌이 다시 되돌아와서 또 다시 굴려야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때, 인생살이 끝도 없이 고달프게 살아온 우리의 로어셰크가 "하여간 나는 빌어먹을 놈의 돌을 죽을 때까지 굴리겠으니까 말리지말라"고 단호하게 부르짖는 낭만적인 모습을, 기가막힌 목소리로 읊조리는 느와르 영화 독백으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멋이 살도록 이 영화에서는 결말에서 암시적으로 이러한 인간 의지가 영화 속의 사건과 갈등속에서 의미를 찾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암시하는 소재가 로어셰크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느와르 영화 같은 독백"과 직접 연결되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이렇게 보여주는 소재를 선정한 것은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가 떠올랐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노래를 돈 많이 못버는 작가들은 이렇게 부른다: 인세는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또 한가지, 이 영화는 산만한 면이 많은 이야기에서 어쨌거나 묵직하고 어둡고 진지한 느낌이 흐른다는 일관성을 주기 위해서 쓴 술수가 있습니다. 바로 잔인한 장면, 폭력적인 소재, 노출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써먹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워낙에 이것저것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데다가, 서로 다른 인물들이 서로 다르게 흘러가고, 거기에 막판에는 갑자기 갈등이 지나치게 단순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유치하고 몽상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다거나,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가 섞여드는 초능력 영웅의 싸움 장면을 다루면서도 분위기는 흔들리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살벌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끊임 없이 써먹고 있습니다.

도는 살짝 지나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예산 많이 쓰는 상업 영화는 사람 좀 많이 죽어나가고 잔인한 장면 꽤 있는 영화라도 "그래도 개는 산다" "어린이는 죽지 않는다" 같은 규칙은 대충 지키면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어린이도 죽고, 개도 죽습니다. 그거야 그런 이야기로 갈 수 있다고 쳐도, 장면을 보여주는 형태라든가 장면을 보여주는 시간을 따져보면 딱 맞아 떨어지고 아주 효과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잔인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은 거의 없으면서도 조마조마할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를 이끌었던 "다크 나이트"의 사례와는 상반된다고 할만합니다. "씬 시티"와 비교해봐도 "왓치맨"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이나 감정의 고양을 따라 장면들이 펼쳐진다기 보다는, "너무 지루하면 관객들이 졸 수도 있으니까, 가끔 좀 잔인한 장면으로 잠 좀 깨워주자"라는 식으로 단순히 지루함 달래기 용으로 들어간 듯한 부분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여자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인물이 옷 갈아 입고 나타나서 몸매 자랑할 때 고전적인 연출 그대로 발에서부터 화면이 한 번 훑어 올라가는 장면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부분 조차도 수많은 다른 비슷한 영화가 꾸며 놓은 비슷한 모양새 보다 좀 부족하고, 앞뒤 이야기 사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운 대목에 장면이 심궈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칵테일" 같은 영화에 나온다면 사랑을 만드는 장소겠지만, "씬 시티" 같은 영화에 나온다면 시체를 만들어 내는 장소, "왓치맨" 같은 영화에 나온다면 뼈만 남은 시체를 만들어 내는 장소로 등장할만한 곳)

그에 비하면, 영화 전체에 걸쳐서 대체 역사를 이용한 정치 풍자를 곳곳에 심어 놓아서 이 영화가 사회 비판적이고 이념적인 면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효과가 썩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2차대전에서 히틀러가 이겼다면?" "만약에 아직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라면?" "만약에 박정희 장군이 궁정동에서 여대생이랑 술먹고 놀고 있다가 부하에게 총 맞아 죽지 않았다면?" 하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심각하게 나가면서도, 순간순간 웃음을 위해 눈에 뜨이는 사소한 소재들을 많이 심어 놓기가 좋을 것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박정희 대통령" 동상 수백개가 서 있는 살벌한 시대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꼭 무슨 천안문 광장에 모택동 얼굴 걸려 있듯이 광화문에 똑같이 박정희 얼굴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장면이 한 번 스쳐지나가면 헛웃음이 한 번 나면서 이런저런 정치,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한 번 하게 될 겁니다.

"왓치맨"에는 이런 이야기 거리들을 상당히 많이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잘 발탁해서 적당히 깔아 놓은  덕택에, 영화가 좀 더 심각해져 보이는 느낌을 잘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 중심 줄거리만 놓고 보면 크게 정치 비판과는 직접 관련 없이도 내용을 꾸밀 수 있도록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자유로운 방식으로 사회적인 소재들이 생각나고 엮이는 어딘지 진지한 향취를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1945년 8월 15일에 촬영된 유명한 이 사진도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로 아쉬운 것은 좀 조절을 하거나 가리거나 보충해도 될 것 같은 몇몇 치명적인 줄거리의 부실한 대목들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꼽자면 악당 두목과 여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악당 두목은 그야말로 로저 무어 이전 시절의 007  영화 악당으로 행동하는데 너무나 도가 지나칩니다. 외딴 곳에 건설된 자기 비밀기지에서 주인공을 죽이기 직전에 괜히 장황하게 자기의 계획을 세세하게 자기 입으로 기나길게 읊어 줍니다. (당연하게도 이 비밀기지는 막판에 가면 왕창 부서집니다) 이 꼴은 매우 경박해 보입니다. 운명에 고민하고 사회의 모순에 번뇌하는 주인공들이 설치던 어두운 영화였는데, 갑자기 보드카 마티니 잔을 들고 목소리 깔고 자기 이름 읊조리면서 아가씨들 유혹하는 이야기 분위기로 확 돌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더우기 007 영화 악당 중에서도 그럴싸한 악당 만큼의 멋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억지로 이야기를 끼워맞추느라 지구정복 계획을 꾸민 악당 총두목이 암살도 자기 손으로 직접하고, 그나마 사람을 자기 손으로 두들겨 패서 죽이는 형태로 암살을 한다고 해버립니다.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도 사소한 일은 후임 이등병에게 시키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도대체 엄청난 조직을 가지고 자기 손으로 지구를 정복하려는 이 악당 두목이 왜 요인암살을 자기 손으로 합니까?

여자 주인공은 일단 할 일 없이 남자주인공 고민 할 때 옆에서 거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남자 주인공이 혼잣말만 계속 하면서 고민하는 장면을 화면에 보여주면 이상하니까, 대화 상대 하나 옆에 세워 두고 대화하면서 고민하는 모습 보여주게 하기 위해서 집어 넣는 아무 행동 없는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나마 여자 주인공의 고민거리 내지는 갈등 거리가 하나 나오기는 하는데, 이것도 워낙에 기가 막히게 진부한 것입니다.  - 2007~2008년 기간 동안 같은 갈등을 다룬 한국 연속극이 한 두편이 아닐 것입니다. -  그나마 납득하기 매우 어려운 관계를 다루면서도 그다지 본 줄거리와는 엮이는데도 없고 따라서 별로 그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도 때려 치워 버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 뒤 따지고 보면 이 장면도 상당히 쓸 데 없는 장면입니다. 아주 의미 없는 부분은 아닙니다만, 이 사람이 이렇게 폼 잡고 서서  대표 사진 홍보자료로 돌릴 만할 대목은 결코 아닙니다.)

"왓치맨"은 "역사가 이때 이렇게 바뀌었다면"하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상상해보는 대체역사물 같은 재미를 적당히 깔아 놓고, 거기에 엮인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덕분에 상당히 방만한 면이 있고, 이정도 소재에 이정도 내용을 다루는 영화치고는 보여주는 방식이나 연출한 방식에서 크게 화려하고 요란뻑적지근한 것이 없는 것도 아쉬운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니만큼, 꽤나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 자극적인 내용들을 충분히 보면서, 보고 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들을 많이 나눠 보기에 좋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재빠른 싸움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느린 동작으로 싸움을 보여주는 연출이 좀 남용되었다 싶은데, 이런 싸움 장면이 괜찮았다거나 등장인물 중에 배우의 매력이나 연기력이 압도적인 사람이 있거나 하기만 했어도 훨씬 더 재미난 영화였지 않았겠나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지게 나오는 인물인 로어셰크는 배우가 그나마 제 역할을 확실히 해 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밖에...

막판에 악당 두목이 보고 있는 TV화면 중에 보면 1984년에 나온 전설적인 애플 컴퓨터 TV 광고가 있는 것이 살짝 보입니다.

80년대 중반에 나온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원작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영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련 말기에 마지막으로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소위 "신 냉전 시절"의 분위기를 좀 더 담뿍 담고 어떻게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말하자면, 옛날 TV극 "V" 같은 느낌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원작을 따라가야한다는 한계 때문에 장면들을 마음껏 못넣어서 그렇지 싶은데, 닉슨과 "닥터스트레인지러브"스러운 장군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위대한 수령"으로 시작해서 "동무"로 끝나는 말투부터 확 이상한 구식 공산당들의 모습도 좀 자주 보여주고 해야 분위기가 확 살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영화 속 시대인 1980년대보다,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초능력 영웅들이 등장하는 1940년대의 복고풍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로어셰크를 중심으로한 느와르 영화 같은 구성을 필두로,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라든가, 비교적 예스럽게 묘사 된 곳이 많은 등장인물들의 집이라든가, 뉴욕 거리를 풍정으로 담는 방식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오히려, 40, 50년대 복고풍에 가깝다는 생각도 더 많이 들었습니다. 배트맨 처럼 말입니다.

지적해주신 바대로, 본문 중에 사용한 "초능력 영웅"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퍼히어로"의 번역어로 쓴 말이었는데, "변신 영웅" 정도의 뜻이 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나에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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