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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1/2




F. 스캇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는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설정 때문에 오래 전부터 영화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고 그런 동안 여러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예정되었다가 취소되곤 했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톰 크루즈와 만들려고 했었고 론 하워드도 존 트라볼타와 만들려고 했었지요. 결국엔 영화의 감독은 데이빗 핀처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인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능력이 돋보이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이지만 저에겐 그리 잘 다가오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벤자민 버튼의 일이 흥미로운 (아마 유일한) 이유는 그가 나이를 거꾸로 먹기 때문입니다. 1918년 뉴올리언즈에서 그는 80세 먹은 노인 모습의 아기로 태어났고 이를 본 그의 아버지는 그를 양로원 근처에 몰래 버리게 됩니다. 양로원에서 일하는 퀴니는 벤자민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그를 친아들처럼 받아들이고 벤자민은 자신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노인들 곁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신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제대로 못 움직이는 노인이였지만 점차 그는 젊어져 가고 이런 동안 자신의 첫사랑이 된 소녀 데이지와 안면이 트이게 됩니다. 하지만 서서히 활력을 얻은 그가 자신이 살던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 벤자민과 데이지는 멀어집니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벤자민에겐 결국 데이지 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다가오는 가운데 뉴올리언즈의 병원에서 죽어가는 데이지에게 딸 캐롤라인이 일기장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전달됩니다.



각본가 에릭 로스와 로빈 스위코드는 원작의 설정만 빌려와서 변경했습니다. 원작에서 벤자민 버튼은 진짜 80대 노인 모습 그대로 출생하고(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이를 거꾸로 먹습니다. 고약한 영감에서 외부 세상에 대한 감각이 전무한 갓난아기로 일생을 마치지요. 반면에 영화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정신세계는 똑바로 가고 육체만 거꾸로 갑니다(어떻게 어린 몸에 그런 병에 걸리는 게 가능했을까!). 이런 설정을 기본으로 해서 각본가들은 이야기를 2시간 47분이나 부풀려 놓습니다. 그들은 이 긴 시간 동안 인생이 잔잔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전달하려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거꾸로 가는 벤자민은 처음부터 시간이 똑바로 가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존재이고 저도 그와 영화에서 동떨어짐을 느끼면서 이야기에 그다지 몰입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에릭 로스가 전에 각색해서 오스카를 받은 [포레스트 검프]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벤자민에게는 친엄마 같은 존재인 퀴니는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You never know what's coming for you)라고 말하고 이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초콜릿 상자가 금세 연상됩니다. 사실, [포레스트 검프]의 요란한 풍자를 대부분 제거한 것처럼 에릭 로스는 풍자 단편 소설에서 감상적인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벤자민 버튼은 포레스트 검프처럼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20세기를 거칩니다. 부흥회에 나가기도 하고, 늙은 모습에도 불구 총각 딱지를 떼고, 세상 곳곳을 다니다가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우연히 호텔에서 만난 엘리자베스 애보트와 사랑에 빠지고, 어느덧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하다가, 어느 새 60년대를 겪습니다. 하지만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때문에 결국엔 이 모든 일들은 벤자민과는 무관하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만 빼면 흥미로운 인간이 아닙니다.



각본은 벤자민과 데이지의 러브 스토리가 한 순간만 같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애잔한지 보여주려고 애쓰지만, 불행히도 그건 잘 먹히지 않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좋은 배우이지만 그는 뭔가 좀 비정상적인 것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가는 배우입니다. 그가 늙은 모습으로 케이트 블란쳇을 만날 때는 적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인 벤자민과 데이지의 나이가 동등한 때에 브래드 피트는 [조 블랙의 사랑]만큼이나 멀끔하게 나오고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반대편에서 걸어와 만나고 또 멀어진다는 것은 듣기엔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벤자민과 데이지는 애초부터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그 결과 그들의 러브 스토리는 별로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느낌은 같은 길을 걸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지만, [에일리언 3]에서나 [조디악]에서나 데이빗 핀처는 결코 형편없게 보이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으로 간다]는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데이빗 핀터는 [조디악]에 이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고 야간 장면들은 [조디악]이 연상되는 가운데 그에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의상과 세트도 나무랄 데 없이 근사하고 여기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우아하고 절제된 음악이 곁들어지니, 별로 마음에 안 다가오는 이야기가 흐느적거려도 괜찮은 볼거리가 있으니 그렇게 나쁘지 않더군요. 특히 한밤중에 벤자민과 데이지가 안개가 자욱한 쉼터에서 함께 하는 순간은 그림 같은 멋진 광경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작품상을 비롯해서 13개 후보에 올랐는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저도 영화가 기술관련 부문에선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분장상과 특수효과상을 거머쥘 것이고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대역 배우에 이음새 없이 붙여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게 한 것은 훌륭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브래드 피트를 서서히 젊어지게 하는 동안 다른 배우들을 서서히 늙어가게 한 분장도 일급입니다.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영화 속 배우들은 전반적으로 훌륭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올랐지만 그건 아마 온갖 특수효과와 분장 속에서 파묻히지 않으면서 영화를 이끌어간 것에 대한 예우일 것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러브 스토리가 잘 다가오지 않은 탓에 그리 많은 인상을 남기지 않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퀴니 역의 타라지 P. 헨슨이나 추운 무르만스크에 걸맞게 등장하는 틸다 스윈튼이 좀 더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각본은 이들을 여느 다른 조연 배우들처럼 그냥 흘러 보내버립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본 영화를 보기 전날 밤 F. 스캇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봤습니다. 의상, 세트, 촬영 등 겉모습을 나무랄 데가 없지만 영화는 원작을 무성의하게 따라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텅 빈 느낌만 남았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보기엔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이야기는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시작에서부터 문제가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내내 거리감을 느끼면서 잘 다듬어진 화면을 2시간 반 넘게 지켜봐야 됩니다. 멋진 볼거리이지만  영화에서 뭘 얻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에린 브로코비치] 이후 오랜 만에 딱히 좋아하지 않는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에 오른 것에 재미있어했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나에게오라
과학자가 본 영화 "엔트로피법칙 위배…현실적으론 불가능"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희귀한 사건’이 할리우드 영화로 재탄생돼 상영 중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80세 정도의 외모로 태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지는, 보통 사람의 세월과 반대로 가는 인생을 사는 주인공의 펼쳐지는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러면 영화 속 벤자민처럼 한 개인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게 가능할까.

이 영화에서 벤자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건, 벤자민의 육체가 노쇠한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다가 어린아이가 돼 죽는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시간은 육체의 시간이며, 물질의 변화에 의해 드러나는 시간을 말한다.

늙은 노인의 모습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회춘’과 같은 이런 설정은 가능한 것일까.

카이스트 물리학과 김재은 교수는 “과학적으론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모든 과학자들이 절대적 진리로 인정하는 ‘열역학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제1법칙’과 ‘제2법칙’으로 나뉜다.

우선 제1법칙은 ‘우주에 있어서 물질과 에너지의 총화는 일정하며, 결코 새로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물질은 그 형태만 변하며 그 본질을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리고 ‘열역학의 2법칙’, 즉 ‘엔트로피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 즉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로 변화한다.’ 요컨데 ‘엔트로피의 법칙’은 우주의 모든 것이 체계와 가치로부터 시작, 혼돈과 황폐를 향해 간다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육체의 늙음도 이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김 교수는 “엔트로피의 법칙은 인간의 육체적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는 것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진행한다는 걸 의미한다”며 “그러므로 벤자민처럼 늙은이에서 젊은이로 변화해간다는 건 우주의 기본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정회 교수도 “모든 생명체는 노화가 되서 죽는 것인데 영화 속 벤자민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육체가 어려지고 있다”며 “이는 영화라서 가능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며 젊어지는데 죽는다는 건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벤자민의 육체적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건 하나의 영화적 설정이며,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이런 육체적 구속과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사랑은 육체적 만남이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시간을 뛰어넘으며 시간에 종속된 육체의 한계 또한 초월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하나 깊어지는 주름을 보며 한숨 쉬는 이들에게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정녕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꿈과 같은 일인 것이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충청투데이에 있습니다.


노컷뉴스 제휴사/ 충청투데이 권도연 기자
Posted by 나에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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