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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 <별일 없이 산다> 사전 예약만 8천 장, ‘장기하와 얼굴들’을 만나다
발매 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2월27일이던 앨범 발매일을 며칠 앞두고 장기하는 2009 한국대중음악상의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남자 부문에서 빅뱅의 태양을 누르고 수상자로 뽑혔다.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데뷔 앨범 <별일 없이 산다>(지난해 하반기 그가 일으켰던 신드롬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역설적인 제목인가)는 사전 예약으로만 8천 장이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모자라 1만 장을 곧바로 추가 발주했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열린 콘서트는 예매 시작 45분만에 모두 매진됐다. 이날 공연장에는 가수 이적, 개그우먼 김미려,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 등 각계각층의 저명인사가 얼굴을 보였다. ‘장기하와 얼굴들’과 관련된 뉴스가 계속 포털 메인에 오르고, 앨범 구매자들은 앞다퉈 자신의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다. 급기야는 일일 앨범 판매량 전체 1위에 올랐다.

말도 노래하듯, 노래도 말하듯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장기하 현상’이 거품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에게 쏠려 있는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전범이 없는 일이었다. 마케팅의 승리도 아니었고 마니아들의 적극적 지지만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중 혹은 네티즌에 의해 발견된 노래 한 곡이, 그리고 뮤지션 한 명이 인터넷에서의 유명세를 타고 승천한 것이다. 하지만 장기하는 덤덤했다. 신드롬이 시작되기 직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말투에 ‘별일’이 없다. 이 사람이 성공담의 주인공인가 싶을 만큼 그대로다. “놀랍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안 팔렸다고 해도 공연 열심히 한다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 덤덤함은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작품이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담감. 그 부담감은 많은 뮤지션에게 영합 아니면 헛발질을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전작과 비교했을 때 별다른 게 없거나 자의식만 넘치기 일쑤다. ‘소포모어 징크스’(성공적인 데뷔를 한 초년생이 이듬해에 부진을 겪는 일)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별일 없이 산다>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모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더 밴드 지향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는 것뿐이다.

지난해 화제의 중심에 섰던 <싸구려 커피>가 싱어송라이터 장기하의 작품이었다면, <별일 없이 산다>는 공연을 위해서 결성했던 ‘장기하와 얼굴들’, 즉 장기하와 이민기(기타), 정중엽(베이스), 김현호(드럼) 그리고 미미시스터즈(코러스·안무)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밴드 사운드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밴드 이전에 청년들이 무리지어 하는 음악을 가르켰던 말, 즉 그룹사운드의 색채가 강하다. 기타톤은 복고적이고 1970년대 포크 그룹을 연상시키는 코러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성가대의 합창이 뒤에 깔리기도 한다. 송창식과 송골매, 산울림 등 이미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에 레퍼런스로 따라붙던 이들 외에도 신중현과 이장희의 잔향도 스쳐 지나간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일부러 복고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그때 음악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운드도 그쪽 영향을 많이 받았을 뿐이죠.” 첫 곡인 <나와>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별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뽑는 배철수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곡이다. “배철수 선배님은 말해도 노래하는 것 같고, 노래해도 말하는 것 같아요. 그분이 지금 음악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하다 보니 때로는 가수가 노래한다기보다는 배우가 대사를 친다는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별일 없이 산다>의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같은 부분은 흡사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의 대사에서 샘플링한 것처럼 들릴 정도다. “그런 걸 딱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다만 우리말 문장을 써놓고 읽으면서 생기는 리듬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죠. 그런 부분에 제일 강한 사람들이 배우잖아요.”



‘장기하와 얼굴들’은 앨범의 타이틀 곡을 <달이 차오른다, 가자>로 정했다. 가장 신경써서 작업한 곡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녹음되기도 전에 EBS <스페이스 공감>, 한국방송 <이하나의 페퍼민트> 등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동영상만으로 이미 히트곡의 반열에 올랐던 노래다. “아무래도 동영상에서 추출된 음원은 라이브 버전이니까 의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앨범에서만 들려줄 수 있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어요.”

명품 CF도 이미지 안 맞아 거절

고단하고 비루한 자취 생활을 유머러스하게 노래로 담았던 <싸구려 커피> 때문에 장기하는 본의 아니게 ‘루저의 왕’ 취급을 받았다. 의도했던 건 아니다. 자신의 20대에게 바치는 선물로 <별일 없이 산다>를 생각하고 있는 장기하의 20대도 남들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겪는 성장통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많았고, 괴로운 일도 많았다. 별다른 게 없었다. 그런 경험에서 추출한 노래들을 앨범에 담았지만 남들이 그렇게 바라봤을 뿐이다.

다른 노래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만들었다고 해명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느 곡을 짚어 물어봐도 “말로 할 수 있는 거면 뭐하러 노래로 했겠냐”며 대답을 회피하지만 <싸구려 커피>에 대해서만은 꽤나 자세한 설명을 하곤 했던 이유도 본의 아닌 오인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본인은 실제로 자취를 한 적이 없으며 그리 가난하게 살았던 적도 없다는 기존의 설명말이다. 하지만 ‘루저들의 왕’이든, ‘홍대 앞의 서태지’든, ‘가요계의 버락 오바마’든 그는 여전히 파카 한 벌로 겨울을 나고, 학교 다닐 때도 입었을 법한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고, 명품 브랜드의 CF 제의도 본인들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고, 매니저와 시간이 안 맞으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방송사를 다니고, 앨범이 팔리든 안 팔리든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크다.

보통 아이디어란 한가할 때 떠오르는 법인데 태어나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 그럴 수 있을까. “인생의 대부분이 한가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지켜봐야죠.” 비록 <별일 없이 산다>에 담긴 곡들은 대부분 한가했던 시절에 진작 만들어진 곡이었다. 하지만 앨범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결코 한가하지 않았다. 온갖 방송에 불려다니고 공연에 초청받고, 그 와중에 틈을 내며 계속 녹음한 앨범이다. <싸구려 커피>가 녹음됐던 허름한 작업실에서, 마찬가지로 친구 겸 엔지니어인 나잠수와 함께.

허름한 작업실, 나잠수와 함께

그는 본래 밴드 ‘눈 뜨고 코 베인’의 드러머로 음악을 시작했다. 한때는 드럼 연주로 밥을 먹고살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드럼 스틱을 휘두른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연주가 아니라 표현임을 깨닫고 군 제대 뒤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자신의 싱글을 제작했다. 그리고 밴드의 리더가 됐다. 장기하가 늘 덤덤할 수 있는 건 그의 욕망이 스타덤이 아닌, 자기 표현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공에 목숨을 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반하는,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장기하와 얼굴들’은 써나가고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Posted by 나에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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